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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59] 직장잡담 - 꼬우면 님도 하든가

baark 2022. 3. 1. 19:29

 

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꼭 마주치는 부류가 하나 있다.
나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왜 안 힘들어 보여? 나는 눈치 보는데 왜 넌 눈치 안 봐? 하는 사람들.

첫 번째는 신입으로 들어온 동료였다. 경력 차이는 4년 정도? 둘이 공동으로 맡은 일이 생겼는데,
이게 딱 보기에도 개발팀 초기 피드백 없으면 괜히 시간만 버리는 꼴이라 나는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고
피드백 받으려고 호다닥 끝내 놨다. 그런데 신입이 계속 내 업무의 퀄리티에 딴지를 거는 거다.
맡은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. 아니... 그건 조직장이 할 말인데 신입인 니가 나한테 왜 함;
빡침이 몰려왔지만 온보딩이 열악한 곳이다 보니 얘도 (동갑이었다) 답답하겠지 싶어 뭐가 이슈인지 커피챗 해 보니,
결국 요약하자면 자기는 매일 야근하는데 나는 칼퇴해서 꼴받았다는 거다. 일의 퀄리티는 핑계였던 거고.
ㅋㅋ? 이새끼가 그걸 왜 나한테 풀어... 싶었지만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,
'야근할 정도로 일이 많으면 팀장한테 가서 태스크 분배 상담하면 되고, 내가 일을 못한다면 조직장이 알아서 피드백을 줄 일이다. 근데 나는 일 잘한다는 얘기 들었다 ㅎ 그런데도 니가 불만 있으면 조직장한테 가서 클레임 걸으라'고 했다.
그렇게 말하니 싸움을 걸려는 건 아니라면서 김밬 님은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이며, 자신은 신입 병아리(리터럴리 그렇게 말함)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. 난 그때부터 자신을 '병아리'라 칭하는 서른 넘은 성인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.

두 번째는 더 최근. 우리 상위 조직장은 언택트 시대에도 사람은 반드시 대면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관철시키는 분이다.
나 역시 대면이 확실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, 중요한 회의는 되도록 대면으로 진행한다.
하지만 역병이 창궐하는 글로벌 시대에 리모트 커뮤니케이션을 대안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것 역시 별로라고 생각한다.
특히 전사적으로 재택을 권고하고 있는만큼, 나는 조직장이 아닌 조직의 방향성을 따르는 편이다.
자 그럼 여기서는 누가 문제냐?
조직장의 눈치를 보느라 재택 권고 기간에도 꾸역꾸역 회사를 나오면서 재택인 나에게 은근히 눈치를 주는 동료다.
팀 전체 재택/출근 스케줄이 공유됨에도 불구하고 맨날 메신저로 이렇게 말하더라.

- 재택이신가요?
- 아 ㅋㅋ 네네 회사 재택 기간동안은 웬만하면 하려고요~
- 하지만 조직장님은 상관하지 않으실 걸요?

.....? 어쩌라고...
결국 나는 ㅋㅋ미친아 그럼 너도 재택 해 ^^... 라고
는 하지 못하고

- 저도 상관하지 않아요 ㅎㅎ

했다.
실제로 나는 개의치 않고 있으며, 그로 인한 소소한 불이익을 견디고 있다. 일은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한다고 티만 내고 다닐뿐. 그렇게 된 히스토리는 평범한 좋좋소 스토리이니 패스. 재택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. 재택한다고 불이익 주는 상사가 ㅄ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. 나처럼;

놀랍게도 이 두 케이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.

첫 번째, 나만 혼자 튀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.
첫 번째 케이스에서도 나처럼 일 다 마치고 칼퇴하는 사람들이 더 있었고,
두 번째 케이스에서도 나 만큼 재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.

두 번째, 두 사람 모두 내가 최대한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들이라는 거다.
전자는 온보딩 열악한 곳의 신입이고, 후자는 나만 맡던 직무에 추가된 유일한 동료여서
내가 느꼈던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챙겼던 사람들이다.

즉, 같은 행동을 한 여러 사람 중에 굳이 친절했던 나에게만 눈치를 줬다는 거다. 에휴 이 인간들아...
비단 직장 생활 뿐만 아니라, 살다 보면 잘해줄수록 만만하게 보는 놈들은 어디에나 있으며,
대개 그런 놈들은 남들 눈치 보느라 윗사람한테는 찍소리 못하면서 만만한 사람에게 굴절분노(?)를 쏟는다.

대처법은 잘 모르겠다. 나는 그냥 초기에 이상하다 싶으면 한번 들이받고 시작해서 ㅜ...
이것도 쓸 일이 있을까 모르겠지만, 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라 들이받는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하진 않는다.
오히려 아주 간곡하고 공손하게 이야기한다. 당신이 그 행동을 반복했을 경우 내가 그걸 어떻게 해석해서
어떤 조치를 취할 건지 어렴풋한 시나리오를 인지시켜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들이받음이다.
참고로, 내가 그 행동을 취했을 때 상대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에 흠집이 갈 거란 메세지를 줄 때 가장 잘 먹힌다.
당연히 이것 또한 잘못됐을 경우 불이익은 온전히 감수한다. 모든 일엔 대가가 있다ㅎ

노파심에 말하지만 나는 힘들어하고 눈치 보는 게 틀렸다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.
나도 글은 이렇게 단정적으로 써도 기본적으로 스트레스 겁나리 받고 눈치도 겁나리 보는 사람이다 ㅠ
단지, 본인 기분 나쁘다고 남한테 화풀이는 하지 말자는 거다. 정정당당하게 행복합시다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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